이름을 불러주는 사람(person who calls your n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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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양병원 3층 창가 자리에는 늘 같은 할머니가 앉아 있었습니다. 창밖을 바라보고 있지만, 무엇을 보는지는 아무도 알지 못했습니다. 병실 문 앞 명패에는 이름이 적혀 있었지만, 간병인들은 대부분 이렇게 불렀습니다.

“3번 침대 할머니요.”


할머니는 치매가 깊어 사람들의 얼굴도, 자신의 과거도 거의 기억하지 못했습니다. 말을 걸어도 반응이 없을 때가 많았고, 식사 시간에도 숟가락을 든 채 한참을 멈춰 있곤 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점점 말을 줄였고, 할머니는 점점 ‘관리 대상’이 되어 갔습니다.


어느 날, 실습을 나온 간호학과 학생이 그 병동에 배정되었습니다. 학생은 첫날 명패를 보더니 조심스럽게 할머니에게 말을 걸었습니다.

“김○○ 할머니, 오늘 날씨가 좋아요.”


할머니는 아무 대답이 없었습니다. 그래도 학생은 매일같이 이름을 불렀습니다. 약을 드릴 때도, 창가로 모실 때도, 이불을 덮어드릴 때도 늘 이름을 먼저 불렀습니다.

“김○○ 할머니, 조금 차가울 수 있어요.”

“김○○ 할머니, 오늘은 국이 따뜻해요.”


며칠이 지나도 별다른 변화는 없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오후, 학생이 습관처럼 말을 걸었을 때였습니다.

“김○○ 할머니, 창밖에 나무가 많이 흔들리네요.”


그때, 아주 작은 목소리가 돌아왔습니다.

“…그 나무, 내가 심었어.”


학생은 깜짝 놀라 할머니를 바라보았습니다. 할머니는 여전히 창밖을 보고 있었지만, 눈가가 조금 떨리고 있었습니다.

“집 앞에 있던 나무야. 아이가 어릴 때 같이 심었지.”


그날 이후로 할머니는 가끔씩 짧은 말을 꺼냈습니다. 아이 손을 잡고 시장에 가던 이야기, 비 오는 날 빨래를 걷지 못해 웃었던 기억. 모두 조각처럼 끊겨 있었지만, 분명히 ‘삶’의 흔적이었습니다.


학생의 실습이 끝나던 날, 마지막 인사를 하러 갔을 때 할머니는 또다시 말이 없었습니다. 학생은 조금 아쉬운 마음으로 말했습니다.

“김○○ 할머니, 저 오늘로 실습 끝이에요.”


잠시 후, 할머니가 아주 느리게 고개를 돌려 학생을 바라보았습니다.

“고마워… 내 이름 불러줘서.”


그 말은 또렷하지도, 길지도 않았지만 학생은 그 자리에서 울음을 참아야 했습니다. 이름을 불러준다는 건, 그 사람이 여전히 ‘사람’이라는 사실을 잊지 않겠다는 뜻이라는 걸 그날 처음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 이후로 병동에서는 조금씩 변화가 생겼습니다. 간병인들도 이름을 부르기 시작했고, 할머니는 다시 ‘3번 침대’가 아니라 ‘김○○ 할머니’가 되었습니다.


기억은 사라져도, 이름을 불러주는 사람이 있는 한, 한 사람의 삶은 완전히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을 그 병동은 조용히 배우고 있었습니다.




도도한 쭌냥이

전반적인 과학 분야와 엔지니어링 분야 등 다양한 주제에 관심이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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